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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학원 초석을 다지다

글쓴이 커뮤니케이션센터

조회151 작성일 2021-11-23

경희학원 설립자 탄신 100주년, ‘학문과 평화’ 그 창조의 여정①
전쟁 폐허에서 태동한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가치
‘경희정신’ 일관되게 관통하는 교명·교시·교훈·학원가 제정
10년 만에 유치원, 초·중·고, 대학, 대학원 종합학원 체제 갖춰

경희학원이 올해 설립자 탄신 100주년, 종합학원 체제 출범 60주년을 맞아 오는 11월 26일(금) 기념식을 거행한다.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는 6·25 전쟁 중인 1951년 5월 18일 피란지 부산에서 대학을 인수하고, 경희정신의 모태가 된 저서 『문화세계의 창조』를 탈고했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종합학원 체제를 수립하며 경희학원의 초석을 다졌다. 사진은 1953년 11월 24일 본관 기공식 모습(제공: 경희기록관).


경희의 가치와 철학, 역사와 전통은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로 함축된다. 그 초석을 다진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는 시대와 역사를 성찰하면서 인간, 그리고 인류사회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문명사적 대붕괴를 걱정하는 현시대에 그 성찰이 다시금 필요하다. 경희학원은 올해 설립자 탄신 100주년, 종합학원 체제 출범 60주년을 맞아 위기의 시대, 그 혼돈 속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을 찾아 나서는 경희의 정신과 철학, 역사와 전통을 되새긴다. 세 차례에 걸쳐 △경희 서사의 시작 △경희 가치의 지구적 확산 △경희의 미래비전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평화 없는 냉엄한 현실은 성난 파도처럼 포효하고, 우레처럼 진동하며, 때로는 만경창파(萬頃蒼波)와도 같은 살풍경(殺風景)이다.”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는 1951년에 쓴 저서 『문화세계의 창조』에서 당시 시대 상황을 이렇게 서술했다.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한반도는 폐허와 다름없었다.

그 폐허에서 설립자는 경희의 터전을 세웠다. 신흥초급대학을 인수해 1951년 부산 동광동에서 첫 캠퍼스 시대를 열었다. 판자 교사 세 채, 재학생 122명, 교직원 5명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유치원에서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 이르는 일관교육 체제를 터 닦은 뒤 사이버대학교, 경희의료원, 강동경희대학교병원까지 아우르는 종합학원 체제를 수립했다. 설립자는 ‘의지는 역경을 뚫고, 협동은 기적을 낳는다’는 신념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경희학원의 초석을 다졌다.

역동적인 현실 돌파 의지 담은 ‘경희정신’
설립자는 6·25 전쟁 중인 1951년 5월 18일 피란지 부산에서 ‘교육의 힘으로 나라를 세우겠다’는 교육입국(敎育立國)의 뜻을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1949년 가인가 설립된 신흥초급대학을 인수했다. 이날은 경희정신의 모태가 된 설립자의 저서 『문화세계의 창조』를 탈고한 날이기도 하다.

설립자는 진영 간 갈등과 이념 대립이 빚어낸 민족상잔의 역사에서 양심이 무너진 현실을 마주하고, 문제의 본질을 깊이 성찰했다. 그 결과, 인간의 인간적인 미래사회를 염원하며 평화로운 인류사회, 풍요로운 미래문명 창달을 주창했다. 시대의 아픔과 시련을 넘고자 했던 꿈과 희망이 경희 서사의 시작이다.

설립자는 『문화세계의 창조』에서 “사회가 어떻게 변하든지 시대가 얼마나 흘렀든지 간에 항상 옳을 수 있는 양심을 만들기 위하여서는 옳고 보편타당한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런 사회가 곧 문화적 복리주의의 사회(문화세계)인데 (···) 진정한 자유와 평화 건설로 문화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설립자의 생애 업적과 철학을 계승·발전시킬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미원기념사업회 최관호 사무총장은 경희정신의 의미를 “경희정신의 밑바닥에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현실 돌파 의지가 있다”면서 “마주하는 새로운 국면마다 담대한 발상과 위기 극복의 의식 전환이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경희는 1954년 부산에서 서울 회기동으로 캠퍼스를 이전했다. 설립자는 허허벌판에서 100년 후를 내다보며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수립, 건설에 착수했다.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가치 실현과 ‘세계적인 대학’을 향한 담대한 비전을 구현할 터전을 닦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1953년 부산 동대신동 임시 교사, 1954년 서울캠퍼스 모습(제공: 경희기록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적인 학원 건설’ 꿈 키워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설립자의 의지는 교사도 교지도 없는 그야말로 이름뿐인 대학을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는 국내 최초의 종합학원으로 키워내는 기반이 됐다. 설립자는 초창기의 거듭되는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세계적인 학원 건설’의 꿈을 키웠다.

그 원대한 꿈을 1954년 5월 20일 열린 학장 취임식에서 공표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은 한국의 어느 대학보다도 동양적이요, 세계적으로 내놔서 첫째가는 제일 대학과 경쟁해야 되겠다. 그렇기 위해서는 백배, 천배의 노력과 정성을 바치지 않아가지고는 아니 될 듯 생각한다”면서 전쟁의 폐허 속 세계 최빈국에서 국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제일의 대학을 향한 의지를 천명했다.

1954년 경희는 피란지 부산에서의 역사를 접고 서울캠퍼스 시대를 열었다. 설립자는 1953년 휴전 후 대학을 서울로 이전하기로 결심하고 고황산 일대 약 30만 평의 교지를 확보했다. 그는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 황무지에서 100년 후를 내다보며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수립, 건설에 착수했다.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가치 실현과 ‘세계적인 대학’을 향한 담대한 비전을 구현할 터전을 닦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신생 학원의 만성적 재정난은 끝이 안 보였다. 설립자는 자택을 처분하고 병마와 싸우면서 캠퍼스 건설을 이어나갔다.

설립자는 가장 먼저 ‘세계적인 대학’을 향한 비전, ‘학문과 양심의 자유’에 기초한 진리 탐구와 인간 육성이라는 웅지를 펼칠 위용을 갖춘 전당으로 본관 석조전 건설에 착수했다. 1953년 착공해 1956년 준공되고, 1975년 증축된 서울캠퍼스 본관 석조전은 경희학원의 상징적인 건물로 자리 잡았다. 본관을 건설할 당시 우리나라는 기술도 자본도 없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그런 시기에 우리나라 사람 기술과 손으로 지은 최초의 석조전이다. 정부는 그 가치를 인정해 2018년 12월 31일, 본관 건물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741호로 지정한 바 있다.

설립자는 1951년 대학을 인수한 후 10년 만에 유치원에서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 이르는 일관교육 체제를 터 닦은 뒤 사이버대학교, 경희의료원, 강동경희대학교병원까지 아우르는 종합학원 체제를 수립했다. 사진 왼쪽부터 설립 초기 경희유치원과 경희초등학교 모습(제공: 경희기록관).


인간의 인간적인 세상, 지속 가능한 미래에 공헌하는 ‘경희정신’

설립자는 경희 캠퍼스에 새로운 꿈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 교육의 전 과정을 일관된 체제로 묶어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학원 설립이었다. 설립자는 ‘문화세계의 창조’라는 창학정신을 구현하려면 어릴 때부터 성년에 이르기까지 경희의 철학과 정신이 담겨 있는 일관된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희의 교육 방침, 즉 ‘전인교육, 정서교육, 과학교육, 민주교육’을 각급 학교에서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실시하고자 했다. 또 ‘창의적인 노력, 진취적인 기상, 건설적인 협동’을 통해 자기 발전을 이루고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960년 경희중·고등학교 설립에 이어 이듬해 경희초등학교와 경희유치원이 문을 열면서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는 종합학원 체제를 갖춘 경희학원이 출범했다. 1984년에는 평화복지대학원을 설립해 평화 이론과 구현방안을 연구하고, 미래 종합문명사회를 선도할 실천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새로운 교육체계를 구축했다. 1965년 동양의과대학 인수 합병 이후에는 의학, 한의학, 치의학, 약학, 간호학을 포괄하는 의과학 체계 구축을 본격화했다. 그 첫 번째는 국내 최대 규모의 경희의료원 건설이었다. 경희의료원은 1,000병상 규모로 지어졌는데, 당시 국내 유명 대학병원이 500병상 규모였던 것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규모였다. 시설 면에서도 국제 수준의 최신 의료기기와 첨단 시설을 갖췄다. 경희의료원은 착공한 지 6년 만인 1971년 10월 5일 준공했다. 2006년에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을 개원해 ‘질병 없는 인류사회 구현’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2001년에는 경희사이버대학을 설립해 온라인 고등교육의 장을 열었다.

1960년에는 교명도 신흥에서 ‘경희’로 변경하고, ‘경희학원가’를 만들었다. ‘경희(慶熙)’는 객체와 주체, 양과 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생성의 법칙과 일원론적 우주관을 함축하고 있다. 광활한 우주에 던져진 왜소한 인간의 전환적 사유와 함께 ‘인간의 문화세계’를 창조해보자는 소망을 담고 있다. 설립자가 작사한 ‘경희학원가’는 모든 경희인이 추구해야 할 이상과 사명을 담고 있다. ‘학술로 닦고 닦아 한반도 빛내보세’로 시작하는 경희학원가는 ‘정의 수호, 진리 추구, 가치 창조 위하여’를 노래하고, ‘복지사회 이룸은 우리의 사명’이라고 밝힌다.

인간의 인간적인 세상,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경희정신은 교명, 교시, 교훈, 학원가 그리고 경희의 역사를 일관되게 관통한다.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가치를 기반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초석을 놓겠다는 경희정신. 이를 계승하는 우리는 경희정신이 이 시대에 어떤 과제를 제기하는지, 어떤 의식과 태도로 실천의 장을 만들지 함께 고민해 새로운 도약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경희학원은 올해 설립자 탄신 100주년, 종합학원 체제 출범 60주년을 맞아 역사와 전통을 되짚으면서 경희정신과 설립자 메시지를 되새기고, 앞으로 어떤 미래를 써나갈지 구성원과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오는 11월 26일(금) 설립자 탄신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 행사는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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